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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즈벨트 대통령이 우울증을 이겨낸 극단적인 방법

by 가십걸 2020. 1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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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즈벨트 대통령이 우울증을 이겨낸 극단적인 방법

 

TR jumping hurdles at the Chevy Chase club Washingto, 1902

 

박물관이 살아있다 (Night at the Museum) 영화 시리즈의 감초 역할을 톡톡히 했던 루즈벨트 대통령의 모습을 기억하시나요?
그 덕택인지 전세계인에게 그 얼굴이 너무나 친숙한 시오도어 루즈벨트 전 대통령. 영화에서 짧게 마주한 모습으로도 그가 아주 호탕하고 강인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데요. 

 

 

미국 26대 대통령 시오도어 루즈벨트(이하 TR)는 많은 미국인들에게 진정한 아메리칸 히어로로 추앙받는 인물입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사실 우울증 환자였을지도 모른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그의 우울증 타임라인은 1884년 2월 14일에서 시작됩니다. 

1. 어머니와 첫번째 부인의 죽음

1884년 2월 14일, TR의 어머니 미티(Mittie)가 장티푸스로 사망합니다. 애처롭게도 같은 날, 결혼 4년차에 접어들던 그의 첫번째 부인 앨리스 리도 브라이트 병(만성 신장 질환의 오래된 용어)으로 사망합니다. 앨리스 리는 TR의 첫 아이 앨리스를 낳은지 겨우 2일 뒤 사망하는데요. 앨리스 리는 TR과 어린 시절부터 함께한 애틋한 관계였기 때문에 TR의 충격과 슬픔은 더 했을 것 같습니다. 이 때 TR의 나이는 겨우 26세. 그는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뉴욕 주에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법조계 인물이였습니다. 앞길이 창창하던 그는 이 때 본인의 입으로 삶의 빛을 잃었다고 기록했으며, 주변 인들에게 앨리스 리의 이름조차 앞으로 꺼내지 말아달라는 부탁을 할 정도로 많이 힘들어했다고 합니다. 

 

2. 루즈벨트의 어린시절과 정신질환 가족력

 

 출처: Wikipedia

 

TR은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 시오도어 루즈벨트 시니어는 네덜란드 이민자 가정 출신으로, 그 또한 태어났을 때부터 이미 부유했습니다. 그는 뉴욕 태생으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뉴욕에서 주로 활동했습니다. 이 집안이 미국에 정말 대대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점 중 하나가 그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미국 자연사 박물관 등을 설립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사업가였다는 것입니다.

 

 

A view of the exterior of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The Met)
Atmosphere inside the American Museum of Natural History in New York

 

TR에게는 엘리엇이라는 남동생이 있었습니다. 엘리엇은 우리에게는 엘리노어 루즈벨트의 아버지로 더 잘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그는 어렸을 때 TR보다 학업적으로도 우수했으며 리더 자질도 더 뛰어나 오히려 형이 더 적극적으로 행동하도록 부추기는 역할이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술만 마시면 여기저기 문제를 일으키고 다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어두운 면은 그의 평상시 쾌활하고 매력적인 모습에 가려져 아는 이들이 많이 없었습니다.

 

그 후 엘리엇은 1883년 애나 홀(Anna Rebeccal Hall)과 결혼합니다. 그 사이에서 태어난 첫째가 바로 엘리노어 루즈벨트 입니다. 결혼을 한 뒤 그의 술 문제는 알콜 중독으로 악화됩니다. 결국 그는 정신병원에 입원했으나, 치료를 제대로 받지 않았고 후에 자살 시도로 인한 발작으로 사망하게 됩니다. 

 


3. 우울증과 극복 방법

다시 돌아가, TR은 아내와 어머니가 같은 날 사망한 뒤 갓 태어난 딸을 가족에게 맡긴 채 서부로 무작정 떠나버립니다. 그곳에서 그는 오랜 꿈이었던 버팔로(들소) 사냥을 하고 가축들을 돌보며 슬픔을 이겨내려 노력합니다. 그곳에 살고 있던 수많은 카우보이들은 그가 얼마나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고 동부 정치계에서 유명한 인물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그는 그 지역에 살고 있던 사람들과 동화되어 2년동안 그들과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우울감을 극복했고, 동부로 돌아와 정계에 다시 복귀해 승승장구 하기 시작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Edith를 만나 재혼도 합니다. 그의 우울증 극복방법은 결과로 봤을때 매우 성공적으로 보이지만 쉽게 따라할 방법은 아닙니다.

일단 그는 정신질환을 굉장히 타부하는 경향이 있었기에 (+시대적 영향), 그의 감정 자체를 조금도 프로세스 하지 않고 거부했습니다. 실제로 그의 동생이 정신질환으로 힘들어할 때, 위로는 해주지 못할 망정 나약한 존재라며 나무랐습니다(동생이 죽고나서는 감정이 좀 누그러짐)

 

슬픔이나 고통에 한없이 빠져있는 것은 좋지 않을 수 있지만, 슬픈 감정을 마주하게 될 때 그 감정들을 느끼고 잘 돌본 후에 보내주는 것이 더 건강한 방법이지 않을까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감정들이 쌓이고 곪아 시간이 흐른 뒤 한번에 터지게 되어 더 위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외에 이 방법을 쉽게 따라하지는 말아야 할 이유가 또 있습니다. 그 자신조차 우울감에 빠져있던 아들을 본인이 이겨낸 방법으로 도와주려다 실패합니다. 물론 다른 여러가지 장치들이 있었기에 적합한 비교는 아닐 수 있지만 아들과 함께 간 아마존 탐험에서 그는 생사를 넘나들다 아들의 도움으로 힘겹게 살아 나옵니다. 그 후 그의 아들은 평생을 우울증과 싸우다 세계 2차 대전에 미군으로 참전한 도중 자살로 생을 마감합니다. 

 
TR의 삶을 훑어보며 지금과 같이 우울증 치료에 있어 전문적인 치료 방법이나 접근법이 부족했던 과거의 사람들은 병마와 싸우는 것이 참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대인이 우울증 때문에 겪는 고통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도 나아져야 하는 부분이지만, 그 시절엔 정신질환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태도 또한 더 부정적이였기 때문에 혼자 끙끙 앓다가 더 악화되는 사람들도 훨씬 많았을 것 같습니다.

현대 의학이 많이 발전했고, 정신질환의 종류도 다양합니다. 무작정 우울감을 회피하려 하지 않고, 정확한 진단으로 효율적인 치료 방법을 찾는 것이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특권이자 현명한 선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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